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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한 줄로 서라던 말은 어디로 갔나

텅 빈 왼쪽 계단을 앞에 두고도 오른쪽 줄 끝에 서서 기다리는 출퇴근길의 침묵.

카테고리
ORDINARY
분량
약 3분
발행
에스컬레이터

텅 빈 왼쪽 계단과 길게 늘어선 오른쪽 줄

출근 시간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에스컬레이터 진입부를 바라보면 기묘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계단 위쪽은 왼쪽 디딤판이 텅 비어 있고, 바닥 진입부에는 오른쪽 한 줄로 탑승하려는 사람들만 수십 미터 늘어서 있습니다.

왼쪽 줄로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몇 초에 한 명씩 드물게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대기열에 선 누구도 비어 있는 왼쪽 디딤판에 선뜻 올라타지 않습니다. 왼쪽 디딤판에 멈춰 서는 순간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길을 막았다는 무언의 비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바닥에는 과거에 붙여둔 노란 발자국 스티커나 안내문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두 줄로 서라는 문구가, 다른 곳에는 걷지 말라는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안내문 대신 앞사람의 등을 보고 섭니다.

걷는 사람의 속도가 지워버린 절반의 공간

에스컬레이터의 한 줄 서기는 바쁜 사람에게 길을 터주는 양보로 통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중 흐름을 연구한 데이터는 다른 사실을 가리킵니다.

영국 런던 교통국(TfL)은 혼잡하기로 유명한 홀본(Holborn) 역에서 에스컬레이터 탑승 방식을 바꾸는 대규모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높이 23미터가 넘는 긴 에스컬레이터에서 승객들이 양쪽 모두 서서 탑승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시간당 에스컬레이터를 통과한 승객 수는 약 30% 증가했습니다. 이전 방식에서는 전체 승객 가운데 소수만이 왼쪽 줄을 걸어 올라갔고, 나머지 다수는 오른쪽 줄에 길게 늘어서서 탑승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걷는 소수의 이동 시간 몇 초를 줄여주기 위해, 기계가 가진 전체 수송 능력의 절반을 빈 공간으로 방치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계단 형태를 띤 수송 기계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걸어 올라갈 때가 아니라, 모든 디딤판에 빈틈없이 올라타 기계의 정격 속도로 이동할 때 가장 많은 사람을 목적지로 보냅니다. 한쪽을 비워두는 관행은 배려라는 이름을 빌려 전체 대기 시간을 늘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9년 만에 조용히 멈춘 국가의 캠페인

한국에서도 에스컬레이터 줄 서기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 월드컵을 앞두고 바쁜 사람을 위해 왼쪽을 비워두자는 한 줄 서기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번졌습니다.

그러나 승강기 안전사고가 이어지자 정부는 2007년부터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기계 부품이 불균형하게 마모되고, 움직이는 디딤판 위를 걷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잦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부는 지하철 역사마다 두 줄로 서자는 홍보물을 붙이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9년 동안 캠페인을 지속했음에도 시민들의 탑승 습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 줄 서기가 기계 고장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명확한 과학적 인과를 제시하지 못했고, 서 있는 사람과 걷는 사람 사이의 실랑이만 잦아졌습니다.

결국 국민안전처는 2015년 9월 두 줄 서기 캠페인을 공식 폐기했습니다. 정부는 줄 서기 방식을 직접 규제하는 대신, 손잡이를 잡고 디딤판 위에서 걷거나 뛰지 않는다는 기본 안전 수칙을 알리는 쪽으로 물러섰습니다. 행정 규칙이 사람들의 신체 습관을 바꾸지 못한 채 한 발 뒤로 물러선 순간이었습니다.

기계와 규칙이 비워둔 자리에서

현재 시행 중인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규정은 탑승자가 손잡이를 잡고 움직이는 디딤판 위에서 보행하지 않을 것을 규정합니다. 법령과 안전 기준의 관점에서 에스컬레이터는 걸어가는 통로가 아니라 멈춰 서서 이동하는 기계입니다.

그러나 출근길의 계단 위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습관이 작동합니다. 제도는 강제를 포기했고, 기계는 절반의 디딤판을 비운 채 돌아가며, 개인은 비어 있는 왼쪽 칸에 올라탈 용기 대신 오른쪽 줄 끝의 긴 대기를 선택합니다.

텅 빈 왼쪽 디딤판은 배려의 공간이 아닙니다. 물리적 효율과 안전 규정이 사람들의 습관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을 때 남겨진 낭비의 면적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멈춘 기계의 빈틈 앞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차례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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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에스컬레이터 안전관리 대책 마련 (두 줄 서기 캠페인 폐기 및 안전 수칙 전환) (새 창으로 열림)국민안전처 · 2026. 08. 08 확인
  2. Standing on both sides of the escalator at Holborn station: trial results and capacity assessment (새 창으로 열림)Transport for London · 2026. 08. 08 확인
  3.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규정 (새 창으로 열림)행정안전부 · 2026. 08. 08 확인